(사)한반도발전전략연구원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와 번영 발전을 위한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고 남북한 교류협력활동 지원등을 통해
진정한 평화통일을 이룰 수 있도록 앞장서겠습니다.

평화통일기원
산행

후원비안내
231401-04-203491
예금주 : (사)한반도발전전략연구원

홈>평화통일기원산행>회원 감상문

회원 감상문

게시물 상세
제4기 엄유림 학생
작성자 : 관리자(sika@sika.com)  작성일 : 19.12.30   조회수 : 232

처음 역사박물관을 간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원래 역사에 관련된 걸 좋아하던 터라 ‘열심히 공부하고 와야지’ 라는 생각이 앞섰다. 12 14, 아침 일찍 일어나야 했기에 비몽사몽 했지만 독립기념관 정문에서의 웅장함과 왠지 모를 숙연함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처음 갔던 독립기념관은 총 6전시관과 특별관으로 나눠져 있었는데 2전시관의 공사와 빠듯한 일정으로 인해 1,3,4,5,6 전시관만 둘러보기로 했다. 첫번째 전시관의 테마는 겨레의 뿌리로 약 50만년 전 우리나라의 시작이었던 구석기 시대부터 조선시대 후기인 1860년대 이전까지의 모습을 담고 있다. 나라가 생성되기 이전 시대의 모습을 보는 것은 정말 하나의 역사책을 보는 것 같았다. 반달돌칼과 찌르개부터 빗살무늬토기까지, 실물로 보니 정말 아무런 도구가 없었을 때에도 선조들은 필요에 따라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내고 환경에 적응하면서 사셨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이 전시관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고구려 시대의 전시 중 말을 타며 공격을 하는 사람의 모형을 복원해 놓은 것과, 거북선 복원 모형, 또 이순신 장군이 활약했던 여러 전투에서의 전술 방법을 모형으로 설명해 놓은 것, 이 세가지이다우선 말 모형은 크기부터가 분위기를 압도시켰다. 말의 잔근육부터 털의 빗결까지 상당히 자세하게 복원되어 있었고, 고구려인들의 기상이 느껴지는 전시였다. 실제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활 쏘는 실력과 말 타는 실력은 세계에서 버금가는 수준이었다고 하는데 아마도 이 전시가 그러한 모습을 잘 나타내어 주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거북선 모형은 정말 커다라면서도 신기했는데 중간중간 음성이 나와 더욱 경이로운 마음으로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저런 배를 실제로 만들어냈다는 그 자체로도 너무나 신기한데, 또 그 배를 이용해 누구보다 진심으로 싸웠을 선조들의 마음을, 잠깐이나마 느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해전에서의 전술 방법을 복원해 놓은 전시는 앞에 설명한 것들에 비해 웅장한 느낌은 아니었지만, 보면서 선조들이 얼마나 전략적으로 계획을 짜고, 매 전투마다 치열하게 싸웠는지를 알 수 있었고, 이 밖의 전투 모습을 복원해 놓은 전시도 있었는데, 현실적인 시체 모습들이 전쟁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두번째 전시관은(공사중인 2전시관을 제외) 3전시관이었는데 테마는 겨레의 함성이었다. 31운동과 대중투쟁에 관련된 전시였는데 영상으로 보여주는 전시도 많았고, 실제 당시 독립운동에 쓰였던 태극기들과 문서들을 볼 수 있어 더욱 와 닿았던 것 같다. 전시를 보다 보면 후반부에 큰 스크린에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사람들의 모습을 영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 있는데, 다른 음성들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배경으로 흘러나오는 노래가 오히려 영상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해준 것 같다. 영상에서 보면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두 맨몸으로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외친다. 교복을 입은 학생부터 농민들,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들까지.. 그들은 다친 사람들을 부축하며 서로의 의지가 되어주는 것 같았다. 전시를 보면서, 독립운동가분들이 목숨을 바치시면서까지 지키려고 했던 것이 바로 우리나라 라는 것에 대한 경각심과 더불어 그분들의 숭고한 정신을 본받아 우리나라의 가치를 더욱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번째 전시관(4전시관)의 테마는 평화누리이다. 독립운동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배워볼 수 있는 공간인데,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독립운동가분들이 살아생전 독립을 꿈꾸며 하셨던 말씀들이었다. 말씀 하나하나가 전부 독립에 대한 염원으로 가득했다. 집에 돌아와 인터넷으로 더 찾아볼 정도로 가슴에 와 닿는 말이 많았다. 그 중 몇 가지를 소개해보려 한다.

  

1. 유관순 열사-“내 손톱이 빠져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만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실제로 유관순 열사는 모진 고문 끝에 석방되기 직전, 순국하셨다. 돌아가셨을 때의 나이가 18살이셨는데, 지금의 고등학교 1~2학년밖에 되지 않았을 학생이 독립운동을 한다는 것 자체가 정말 대단하면서도 어린 학생들마저 분노할 수 밖에 없었던 당시의 상황이 너무나 비참하고 안타까웠다.

  

2. 우당 이회영- “생과 사는 다 같이 인생의 일면인데, 사를 두려워해 가지고 무슨 일을 하겠는가. 이루고 못이루고는 하늘에 맡기고 사명과 의무를 다하려다가 죽는 것이 얼마나 떳떳하고 가치있는가

  

사실 이회영 선생님에 대해서는 고등학교때까지 자세하게 배운 적이 없었다. 그러다 신흥무관학교라는 뮤지컬을 보게 되었는데 극에서 이회영 선생님이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는 과정에 대한 장면이 꽤 나온다. 오로지 독립운동을 위해 일가족들과 함께 모든 재산을 팔아 서간도로 넘어가 설립하신 것이 바로 신흥무관학교인데, 학문교육과 군사훈련을 함께 병행하던 신흥무관학교는 실제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을 배출하였다. 이회영 선생님 일가의 재산은 지금 돈으로 약 600억원 정도 된다고 하는데, 이 많은 재산들을 전부 독립운동에 사용하셨다는 것 자체가 나로서는 굉장히 충격으로 다가왔다. 또한, 부자였던 이회영 선생님 일가의 독립운동은, 독립운동이 사회계층과는 무관하게 이루어졌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 같아 더욱 뭉클하였다.

  

다 소개할 수 없을 정도로 정말 많은 독립운동가분들이 말씀을 남기셨지만 그 분들이 결국 얻고자 했던 건 독립 그 자체이며, 우리는 이분들이 어떠한 마음으로 이러한 말씀들을 하셨는지 기억할 필요가 있다.

  

 

  

네번째 전시관(5전시관)의 테마는 나라 되찾기이다

  

1910년을 전후한 시기부터는 무장투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며, 실제로 이 전과는 달리 국내외 각지에서 항일무장투쟁이 전개되었다.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봉오동, 청산리 전투부터 크고 작은 규모의 전투들까지, 꽤 많은 전투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승리하였고, 이에 일본은 한인들을 무자비하게 대학살하는 간도참변을 일으킨다. 실제 간도참변에 대한 전시는 정말 끔찍하고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집 안에 사람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방화를 저지르는 등의 무자비한 공격이 이루어졌고, 이에 대한 전시 배경으로 아이를 잃은 부모의 음성이 나오는데, 정말 화가 날 정도로 마음이 아팠다. 이 뒤로는 애국지사들의 의열투쟁에 대한 전시가 이어졌는데, 의열단, 대한광복회, 27결사대, 철혈광복단, 병의의용대 등에 소속된 의사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일제를 상대해 싸웠다. 의거 후 모진 고문을 받거나 사형을 당하는 일도 많았지만, 의사들은 멈추지 않았고 이들의 의거는 침체된 독립운동의 활기를 불어넣는 불씨가 되었다. 실제로 우리가 아는 것 이상의, 굉장히 많은 단체들이 존재했다고 하는데 이러한 분들이 계셨기에 독립을 염원하는 우리 민족의 모습을 수많은 외신에 전달할 수 있었고, 또 중국으로부터의 도움까지 받아낼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섯번째 전시관(6전시관)의 테마는 새나라 세우기이다. 여기서는 일제의 억압에 맞서 우리만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이루어졌던 다양한 노력들을 볼 수 있는데, 민족문화수호운동은 물론, 삼엄한 감시 속에서도 이루어졌던 항일운동은, 사회 각 부문에서 전개되었다. 중국 상하이에 수립되었던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오랜 기간동안 독립운동의 구심점이 되었고, 마침내 1945년 8월 우리나라는 광복을 맞이하였다.

  

독립기념관의 자세한 설명과 전시는 그동안 무지했던 나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이렇게까지 많은 분들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우리나라에서 그동안 별 생각없이 편하게만 살아온 것이, 또 당연하지 않은 일인데 그 감사함을 모르고 지내온 것이 죄송하기도 했고, 부끄럽기도 했다. 나를 비롯한 많은 젊은이들이 이러한 역사의 소중함을 모르고 살아간다. 물론 나 살기도 바쁘고, 경험해보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이해는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의 우리나라가 결코 쉽게 성장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꼭 기억해야한다.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얻기까지, 많은 분들의 노력과 희생이 있었다. 꼭 역사 책에 나오는 분들이 아니더라도, 그 시절의 수많은 사람들이 현재의 대한민국을 꿈꾸며 힘겹게 살아내셨을거고, 이 역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절대 잊어서는 안되는 부분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나는 역사를 공부하는 자리에 다양한 연령대가 가서 관람하였다는 것이 오히려 더 의미 있게 느껴졌다. 이제 막 사회를 나서는 대학생들부터, 이미 몇십년의 우리나라를 지켜보신 어른들이 함께 지난 역사를 되돌아봤다고 생각하니 더욱 뿌듯한 마음이 들었고, 더불어 앞으로도 이러한 프로그램이 더욱 많이 진행되었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이 생겼다.

  
이전글 제4기 엄유상 학생
다음글 제4기 이선영 학생